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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유래

한드미마을 로고

한드미마을이 위치한 어의곡이리는 본래 영춘군 대곡면의 지역으로서 큰 골짜기이므로 영어실
또는 어의곡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의곡, 하의곡, 한곡동, 구익, 울진, 명길리를 병합하여 어의곡리라 해서 단양군
가곡면에 편입되었습니다.

마을비석

마을 입구 마을 숲 옆에 세워져 있는 비석으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한 마의 태자는 속세의 영예를 버리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소백산 높은 봉우리에 당도하고 경주를 바라보면서 망국의 눈물을 흘렸다. 하여 국망봉이라 칭하게 된 해발 1420의 군내 최고봉이 있으며, 소백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주목 군락은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된 우리 어의곡의 자랑거리다.
산천이 신비롭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을전동 새밭계곡은 맑고 투명한 시냇물이 어의곡 주민들의 순박하고 티없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한 대자연의 운치가 가득한 계곡이며, 한곡동 어의굴은 경북 풍기시장을 왕래했다는 전설로써 대대손손 전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라고 비석에 적혀 있습니다. 한드미마을의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이 비석은 한드미마을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어의곡리의 전래풍속

장오용 의병제사

조선 순종 1년(1907년). 의병 장오용(당시 20세)은 일본 헌병 20명이 의병 20명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총을 메고 마을로 진입하려는 것을 마을에 알려 피신시킨 후, 자신은 체포되어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90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장 의병의 전사일(1907년 음력 9월5일)이면 그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산신제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 저녁 11시면 산신제를 지냅니다. 마을 주민 중 생기복덕이 일치하는 청결한 공양주(부부), 축관, 심부름꾼을 선정하게 되며, 산신제를 거행하게 되는 공양주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모두는 고기와 술, 부정한 행위를 금하게 합니다.
제가 끄탄면 마을 주민들은 집에 불을 밝히고 모두 나와 풍물을 치며 마을 어귀 장승으로 향하여 장승제를 지내게 됩니다. 장승제가 끝나면 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덕담을 주고받는 것으로 산신제의 막을 내립니다.

정월 대보름 및 단오

매년 정월 대보름 및 단오 날이면 주민들은 마을회관 앞에 모여 그네뛰기, 윷놀이, 농악 등의 민속놀이를 함께 즐기며 친목과 화합을 도모합니다.

저희 한드미마을에 방문하시면 전래풍속 및 전통놀이를 함께 즐기며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명유래

구익   귀이기
  귀이기(규기 , 구익)   한드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무슨 일을 하건 아홉 번이나 이득을 보는 곳이라는 뜻
  귀이기못   귀이기 서쪽에 있는 못
  아골   한드미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이곳에서 난을 피하였다 함
  규기   규이기
  한곡동   한드미
  박달봉   한드미 동쪽에 있는 660m 높이의 산
  한드미(한 디미)   어의곡리의 중심 마을, 한가하고 조용한 곳
  새미기양지   한드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한드미굴   한드미 남쪽에 있는 천연굴
  새밭(을전)   한드미 동쪽에 있는 새로 된 마을
  한드미못   한드미 동쪽에 있는 못
  소만이   한드미 남쪽에 있는 골짜기
  허기재굴   새밭에서 한드미로 가는 재
  을전   새밭